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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금융이란 무엇인가

Jess Wilder

2024년 2월 3일

오늘보다 나은 내일에 대한 믿음은 금융을 일으켰다. 성장이라는 자양분 속에서 금융의 씨앗은 자연스럽게 발아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만개한 금융이라는 꽃을 우리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오늘보다 나은 내일에 대한 믿음은 금융을 일으켰다. 성장이라는 자양분 속에서 금융의 씨앗은 자연스럽게 발아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만개한 금융이라는 꽃을 우리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혹은 자신이 금융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군가 당신에게 ‘그래서 금융을 한다는 게 어떤 일을 한다는 의미인가요?’라고 물었을 때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물론 그 대답이 그저 ‘돈을 가지고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금융이란 무엇일까?


무엇인가의 의미를 이해하는 일은, 그 용어의 정의를 아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러니 ‘금융’이라는 단어의 정의에서 ‘금융을 한다’는 말의 실마리도 찾을 수 있다. 금융은 영어로 ‘Finance’라고 쓰며 Finance는 ‘조달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물론 여기서 조달의 대상은 돈이다. 그러니 사전에서는 금융을 ‘자금을 조달하는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자금을 조달하다니, 그게 무슨 의미일까?


성장은 파도다. 파도가 치는 바다 위에서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다. 자신을 그 파도 위에 올리는 것, 파도를 탈 수 있는 탈 것을 구하는 일뿐이다. 성장의 시대에 무수히 펼쳐지는 황금의 기회는 그것을 잡을 수 있는 자에게 대가를 준다. 새로운 산업, 토목, 건설 계획은 황금의 기회이지만 그 기회는 자금이라고 부를만한 크기의 돈이 아니면 잡을 수 없다. 그래서 금융은 결국 자금 조달의 문제로 귀결된다. 금융을 한다는 것은 일단 성장이라는 배가 출항할 때 그 배에 같이 올라탈 수 있을 정도의 자금을 조달하는 일을 의미한다. 금융의 시대 이전에 은행의 역할과 이후 은행, 그리고 새로 태어난 주식회사를 비롯한 수많은 금융 회사의 차이점이 여기서 드러난다. 금융 이전에는 단순히 돈을 저장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면 금융 이후에는 돈을 조달하는 것이 목적이 된다.


자금을 조달하는 일을 목적으로 하는 산업, ‘금융’이 눈을 뜨면서 돈 문제에 있어서 또 하나의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사람들이 부채, 다시 말해 빚을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빚은 더 이상 나쁜 것만은 아니었고, 빚을 내더라도 수익성이 충분한 일에 자금을 댈 수만 있다면 빚을 갚고도 가진 것 이상의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이렇게 부채를 활용한 투자를 ‘레버리지 투자’라 이야기하는데 금융이 활발히 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레버리지 투자의 활성화가 한몫을 했다.


부채를 활용하게 되면 내 자본만 사용해서 투자하는 것보다 더 큰 수익을 얻을 수 있었지만 언제나 장점이 있다면 단점이 있는 것처럼 레버리지 투자에도 그에 따른 단점이 뒤따랐다. 문제는 단순했다. 돈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빚을 내고 투자를 했는데 돈이 되지 않았다면 빚은 커다란 압박으로 다가온다. 내 돈만 사용해서 벌인 일이라면 속이 상하더라도 내 돈을 잃는 선에서 문제는 끝이 난다. 그러니 자기자본만 사용한 투자는 좋든 나쁘든 경제적인 영역 안에서 결과가 귀결된다. 하지만 부채를 끌어왔다면 경제적 행위가 인간적인 삶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과도한 레버리지의 활용은 투자 실패가 곧 파산으로 이어지게 되는 문제를 일으켰다.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금융의 정의, 그리고 그 목적을 따라 만들어진 레버리지의 활용은 오늘날의 금융을 결정짓고 과거의 돈 놀음과 분리시키는 가장 특징적인 요소이다. 금융을 하는 개인이나 회사가 고민하는 것들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거대한 금융 기업도 단순하게 보면 자금의 조달과 그에 따른 리스크, 이 두 가지를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자금을 조달한다는 관점에서 투자의 주체가 되는 개인이나 회사는 자신들이 조달할 수 있는 자금의 크기를 측정한다. 가지고 있는 자본은 얼마이고 끌어올 수 있는 부채는 얼마인지를 시시각각 파악한다. 그리고 이 크기를 더 키울 수 있는 방법을 항상 고민한다. 같은 자본을 가진 사람이더라도 빌릴 수 있는 돈의 크기는 다르기 때문에 실제로 조달할 수 있는 돈의 크기는 같지 않다. 이때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신용등급이다. 우리가 돈을 빌려주는 상황이 되었다고 하면 당연히 더 믿음이 가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줄 것이다. 그리고 기업이 주체가 되었을 때에도 그 논리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더 믿음이 가는 기업이 더 많은 돈을 어려움 없이 조달할 수 있고 그 믿음의 크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신용등급이다. 그러니 수많은 금융회사는 자신들의 신용등급에 무수히 많은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조달할 수 있는 자금의 크기가 결정되었다면 다음 질문은 ‘어디에 자금을 조달할 것인가?’이다. 시장에는 수많은 투자 기회가 넘실거린다. 어떤 것은 좋은 결과로 귀결되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좋은 투자안이라고 생각되었지만 실제로는 허울뿐인, 겉만 번지르르한 투자안일 수도 있다. 부채를 활용하기 시작했다면 어떤 투자안을 선택할지에 대한 문제는 상상 이상으로 중요해진다. 투자 결과의 좋고 나쁨에 따라 달라지는 미래의 간극이 더 크게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융회사에서 투자와 관련된 일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 일에 매달려 있다. 물론 금융과 관련된 이론 중 대다수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자연스럽게 어떤 투자안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은 리스크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서로 다른 투자안을 평가할 때 미래의 기대 수익만 가지고 평가하기에는 레버리지가 주는 위험이 너무 크다. 미약한 성공은 미래에 더 큰 성공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남겨두지만 실패는 미래 자체를 없애버린다. 특히 수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묶여서 만들어진 기업의 경우에는 도산이라는 위험을 더 크게 인지할 수밖에 없다.


어떤 투자안이 안정적인 5%의 수익을 주고, 다른 투자안은 반반의 확률로 -10%나 +20%의 수익을 준다. 두 투자의 기대수익률, 즉 확률을 고려한 평균 수익률은 5%로 같다. 이때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보통 사람들은 평균이 같다면 더 안정적인 것을 선호한다. 그래서 전자를 선택했다면 이번에는 후자가 반반의 확률로 -10%나 +25%의 수익을 준다고 가정해보자. 후자의 기대수익률은 7.5%가 된다. 이제는 후자가 더 좋다는 생각도 들 수 있다. 하지만 안정적인 것을 선호하는 사람은 기대수익률이 조금 낮더라도 안정적인 투자를 선호할 수도 있다. 현대 금융의 특징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 여기서 드러난다.


‘우리는 위험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위험을 어떻게 측정하고, 측정한 위험이 한 단위 증가할 때마다 기대수익률이 얼마나 더 높아져야 위험의 증가를 상쇄할 만큼 투자안이 경쟁력이 생기는가, 이러한 질문이 오늘날의 금융, 그리고 금융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질문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답이 없다. 때로는 결과가 과정을 정당화하는데 리스크에 대한 질문도 이러한 평가를 벗어날 수 없다. 리스크가 주는 페널티를 더 작게 평가하는 회사는 더 위험한 투자, 그러나 더 높은 수익률을 얻을 수 있는 투자를 늘릴 것이다. 그리고 그 리스크가 현실화되지 않았다면 그들이 얻은 높은 수익은 그들의 평가를 정당화한다. 하지만 수많은 투자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왔던 회사라고 하더라도 리스크를 과소평가해서 벌어지는 한 번의 실패로 무너지게 된다면 과거의 모든 평가는 뒤집힌다. 그러니 리스크는 지속적으로 관리해나가는 것만이 최선이다.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영역,  금융 주체가 살아남아서 꾸준히 금융, 새로운 미래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지탱해주는 것이 바로 리스크관리다. 오늘날의 금융을 정의하다 보면 이렇게 ‘위험’이라는 핵심 요소가 수면으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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